[Pets] 개와 고양이의 일상 About Sweden

<공원에서 산책하는 개들>
내가 만약 개라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뛰어놀고 싶을 것 같다. 마당이 없는 집이라면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에서 주인과 함께 놀고 싶을 것 같다. 개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지하철을 탄 개들>
내가 만약 개라면, 내 발로 지하철을 타고 싶을 것 같다. 좁은 이동장에 갖히기보단 자유롭게 지하철에 오르고 내리고 싶을 것 같다. 개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야외(Outdoor) 고양이들>
내가 만약 고양이라면, 집 밖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고 싶을 것 같다. 구경도 하고 사냥도 하고 장난도 치다가 졸리고 배고파지면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쉬고 싶을 것 같다. 고양이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문득 '반려동물을 이렇게 기를 수도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계란 후라이만 먹다가 스크램블 에그를 먹어볼 때의 느낌이랄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리법이 다른 것처럼 기르는 법도 다른 느낌이다. 물론, 누군가는 "다 똑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차피 반려동물의 하루는 일어나서 먹고 놀다가 자는 것의 반복이니까. 마치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놀다가, 어디서 자는지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 제각기 살다가 마무리하는 모습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계란 후라이와 스크램블 에그를 모두 좋아하는 것처럼 난 두 환경 모두 좋아한다. 각자의 매력이 뚜렷하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바비큐와 오마카세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정하는 것과 같다. 좋고 나쁨을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는 문제다. 위에서 든 사례들도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달라 보인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개들>
내가 만약 주인이라면, 마당이 있는 집의 잔디를 관리하기 싫을 것 같다. 마당이 없는 집이라면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까지 매일매일 걸어갔다 오기 힘들 것 같다. 개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지하철을 탄 개들>
내가 만약 주인이라면, 지하철 대신 택시로 이동하고 싶을 것 같다. 불편하게 지하철에 오르고 내리기보단 차에 태워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을 것 같다. 개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야외(Outdoor) 고양이들>
내가 만약 주인이라면, 집 밖에서 뭘 묻혀오는 고양이를 씻기기 싫을 것 같다. 힘들게 씻겨놨는데 얼룩덜룩해진 얼굴로 곤충이나 쥐를 물고 집에 돌아오면 밥맛이 떨어질 것 같다. 고양이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좀 더 고려해야할 점들이 보인다. 마당이 있는 집이나 근처에 잔디밭이 있는 집의 가격은 얼마일지? 지하철과 택시의 이용환경은 어떤지? 집에 쥐가 나오는지? 밖에 차가 많이 다니는지? 등 말이다. 반려동물과 주인의 선호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환경도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참으로 다행인 점은 우리에게 드디어 이런 고민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예전처럼 반려동물과의 삶을 시작하고 함께하다 떠나보내는 과정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우리가 다른 선택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아쉽지만 이전 선택보다 더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마치 배가 고파져서 야식을 먹기로 결정했더라도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우리는 더 좋아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제 시야를 개와 고양이가 아닌 우리에게로 돌려보자.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지출 챌린지를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을 욜로의 마인드로 즐길 것인가? 편리한 환경의 서울 아파트에 살 것인가? 마당이 딸린 지방 전원주택에 살 것인가? 아기를 낳을 것인가? 혼자 혹은 둘이서 살 것인가? 다음 끼니는 배달해서 먹을 것인가? 재료를 사다가 요리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쪽보다 더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하나를 선택한다면,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자.

그리하여 그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택하는 문제를 맞닥뜨린다면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외부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외부로 비난을 돌린다면 그건 유약한 태도다.
선택을 진정으로 마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느 쪽도 좋지 않은 선택을 도출하는 과정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의 결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을 판단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려면 그 이면에 숨은 '나는 좋은/괜찮은/올바른 사람이다'는 신념과 작별해야 한다.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쉬웠다면 이미 누군가 해결했을 것이다. 쉬웠다면 누군가는 조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할 수 있는지, 해야하는지를 찾는 가치관이란 문제는 결국 이런 문제다.

인생을 걸고 풀어볼 만한 문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