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비쌌던 하루: 스웨덴에서의 결혼식 About Sweden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축의금도 없고, 예복이나 한복도 다 구매해야 하고, 노래방기기도 사서 보내고 설치해야 하는데, 시작은 16시고 밤 1시에 끝난다는, 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돈만 더럽게 나가는, 달갑지 않지만 아내가 하자고 하니까 하게 된 결혼식이었다.
때론 이런 순간들이, 겪어보고 나서야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으로 남게 된다.

거짓말처럼, 그 날 날씨는 정말 좋았다. 화창하면서도 덥지 않아 참석한 사람들마다 정말 좋은 날씨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사진사 한 분만 "이렇게 너무 맑은 날씨는 사진 찍기 별로다"고 아쉬워했지만.
그 날은 오랜 기다림의 날이기도 했다. 전통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아내의 웨딩 드레스를 신랑은 예식 직전까지 볼 수 없었기에 호기심만 커져왔던 나날의 끝이었다. 올해 말 결혼식을 준비하는 누나의 예비신랑은 드레스를 고를 때부터 함께 봤기 때문에 서로의 취향에 맞는 가장 예쁜 드레스를 골랐다고 아내에게 항변했지만, tradition이라는 한 마디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작의 날이기도 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그런 틀에 박힌 의미로서의 시작은 이미 공식적으로 3년 전에 결혼한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하여 그 다름을 나누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자는 내 다짐이 펼쳐질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신랑은 찬밥이라 옷도, 메이크업도, 헤어도 직접했다. 그 전에는 음향을 준비하고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느라 땀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제 기다려왔던 아내의 드레스를 볼 시간이었다.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 순간을 위해, 언덕 사이로 발트해 바다가 부서지는 잔디밭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준비되었다는 사진사 님의 말과 함께 뒤 돌아본 순간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말하는 미의 기준에 적합한, 다른 표현으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다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나는 이 사회적으로 말하는 '미'라는 것이 개인적인 '미'의 기준과 다를 수 있고, 사회가 정한 기준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저 받아들여야 함을 이해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전통이라는 이유로 웨딩 드레스를 볼 수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하지 않은 아내의 맨얼굴을 신부 화장보다 더 아름답게 느끼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전통'이나 '미'라는 것은 사실 '새로움'이나 '못생김'과 같을 수 있음을 안다. 책 "경이로운 과학 콘서트"에서 다뤘던 "구, 시간, 자유의지, 편향, 사랑, 직관"처럼 사회적인 합의가 있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그런 두루뭉술한 관념임을 이제는 안다. 우리나라에선 한복을 입어야 전통혼례지만, 스웨덴에선 한복을 입으면 새롭다. 우리나라에선 흰 피부를 아름답다고 하지만, 스웨덴에선 태닝한 피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전통'과 '미'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과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도 틀린 것이 아니므로 바로잡을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음으로 식이 진행되었다. 신랑신부 입장과 예식을 진행한 뒤,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장했다. 이어서는 샴페인과 케익을 즐기며 하객들과 함께 자유롭게 대화하고 사진도 찍었다. 이 와중에 잠시 짬을 내어서 한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굉장했다. 함께 사진을 찍는 것 뿐만 아니라, 옷의 색이나 무늬, 노리개에 담긴 의미를 정신없이 물어봐서 뇌정지가 왔다. 노리개 세 줄은 양반임을 나타내고 한 줄은 평민임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그 날 구글링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알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정신없을 때는 일단 뭘 먹으면서 쉬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으론 저녁과 함께 Toastmaster를 맡아준 율리아의 시간이 왔다. 6시부터 시작된 식사는 정신차려보니 9시였다. 그 동안 6번의 스피치, 퀴즈 풀이와 수상, 신랑신부 질문 등 여러 행사로 울고 웃으며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 사이에 석양이 지며 찾아온 골든아워 때, 아내의 손을 잡고 바라본 풍경은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라 미소가 지어질 그런 순간이었다.

**Lars의 영상 스피치는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다. 식사로 나온 스테이크와 와인은 내가 먹어본 최고의 결혼식 메뉴였고 코스도 훌륭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신랑신부 퀴즈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아직도 누가 더 집안 청소를 많이 하냐는 질문에, 아내가 내 신발이 아닌 자신의 신발을 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반대로 더 용감한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난 아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나라고 답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물론 우리 둘 다 동의한 것처럼 더 쿨한 사람은 분명히 아내다.

식사를 마치고는 춤을 추고, 노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피곤한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아내의 웨딩 드레스를 들어주는 일을 포기한 채,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얘기하는 아내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조금이나마 쉬었다. 그런데 노래방 기기를 연결했는데 고음부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피곤한 상태라서 뭔가 고장났다보다 했는데,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앰프 출력부를 잘못 연결했다는 사실이 기억났을 때는 얼마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즐거운 시간은 벌써 새벽 1시가 되어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짐을 나르고 아내의 웨딩 드레스 단추를 한 땀 한 땀 풀러 준 다음 방에 앉아서 쉬는데, 아내가 Linda의 방에 다녀오란다. 폼 클렌저가 담긴 가방을 놓고 왔다고 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갔는데, 통로가 벌써 잠겨서 빙 둘러 방에서 가방을 들고 왔다. 그런데 가방을 가져오니 폼 클렌저가 없어서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이미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워 있는 Lars와 Linda의 모습을 아직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는 채로 보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또 스웨덴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어머니께 결혼식은 어떠셨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라는 호칭 대신 본명으로 불러달라 농담까지 하셨던 어머니의 감상은 의외였다. 본인 어린 시절 결혼식 같다는 말씀이셨다. 이웃과 친척들을 초대해 하루 종일 잔치를 열고, 또 묵을 사람들은 방에서 자고 갔다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이 생각나셨다고 한다.

오늘을 살아가며 또 하루 멀어져가는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것은 무엇일까? 스웨덴의 결혼식에서 70년대 한국의 결혼식이 떠올랐다는 어머니의 말이,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를 모두 경험하여 그 다름을 나누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자는 내 다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