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첫 면접탈락 About Sweden

두 번째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메일을 받았다. 아쉽지만, 미팅에서 실수했던 점을 정리하여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탈락의 원인으로 메일에 언급된 이유는 경력 부족이었다. 그러나, 심적으로는 면접 도중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웨덴에서의 업무 경험을 한국에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점이 탈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1. 해당 발언 후 면접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2.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목표이므로 부적절한 답변이었으며 3. 회사의 기술을 한국에 유출하겠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답변이었다.

내 의도는 기술적인 면보다는 문화적인 면으로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는 답변이었으나,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예전 한국에서의 첫 면접 때 나중에 스웨덴에서 일하고 싶다고 언급했던 것과 유사한 실수를 반복했다는 점이 더욱 아쉽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번 탈락을 통해 실수를 고치고 두 달 후 시작될 sfi 교육도 받으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꾸준히 취업을 준비하자.

[Education] Joar에게 들은 스웨덴의 초등 교육 About Sweden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인 사촌 Joar을 지지난 주말 고모의 생일파티에서 만났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복잡한 어른들 대화에 어린이가 끼기 어렵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라, 나는 우선 고모가 만드신 맛있는 다과들을 한 조각씩 맛본 뒤, 심심해하는 Joar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궁금했던 스웨덴의 교육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찬스였다. 시간표는 어떤지? 과목들은? 교사와 학생들은? 배우는 방식은? 좋아하는 점은? 등을 하나씩 묻다보니 어느새 떠날 시간이었다. 너무 물어보기만 한 것 같아서 대화를 끝내기 전에 내가 질문한 이유를 말해줬다.
 이전에 아시안이지만 1~2살에 스웨덴 가정에 입양된 친구를 만났다. 누가 봐도 동양인이지만 말과 행동은 전형적인 서양 사람이었다. 반면에, 아시안 부모가 스웨덴으로 이민을 와서 자란 친구들은 동양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 모두를 갖고 있었다. 한국 사람인 나는 당연히 동양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어쩌다 이런 차이가 생겼을지 궁금해져서 네게 물어봤다고 말해줬더니, 자기는 그 이유가 가정과 학교같은 생활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귀여운 녀석,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캐물어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시간 가깝게 사촌의 귀찮은 질문에 대답한 녀석이 고마워서 말했다. "Jag håll med dig." 그랬더니 녀석이 "I agree with you"는 "Jag håller med dig"라고 고쳐줬다.
 궁금했던 스웨덴의 초등 교육을, 질문마다 자신의 의견에 예시를 들며 또박또박 답해주는 Joar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한국 교육의 산물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많다. 지난 대화에서 알게 된 정보로는 충분치 않다.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례들과 요인들이 필요하다. 다음에 만나면 또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에 입이 근질근질하다. 절대로 초콜릿 퍼지 케익 때문은 아니다.

[History] 국립역사박물관 - 3. 1800년대 ~ 1900년대 About Sweden

글을 쓰고 있는 22년 11월 21일의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내린 눈의 무게에 비틀거리는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오늘 한낮에 20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는 고향의 풍경을 맘에 그려본다. 겨울이 이 곳에 먼저 찾아온 것처럼, 역사의 흐름도 단지 이 곳에 먼저 찾아온 것 뿐 일지 모른다. 또, 같은 이름이지만 우리의 겨울과 이 곳의 겨울은 다르다.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그저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애견과 함께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음을, 혹은 현장 미팅을 취소하고 원격으로 전환할 수도 있음을 접하길 바란다. 그를 통해 눈이 많이 내릴 어느 날 출근을 앞두고 문득,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스웨덴의 19~20세기를 적는다.



19세기 들어 스웨덴의 인구는 전통농업국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엄청난 인구이동이 뒤따른다. 인구의 20~25% 가량되는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민을 선택하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도시들은 철도로 연결된다. 이러한 막대한 변화는 불평등한 사회 계층을 낳기에 자유 교회와 같은 대중 운동이나 초기 사회주의처럼 새로운 생각을 부른다.

6.25 전쟁 후 우리도 비슷한 역사의 흐름을 거쳤다. 58년 개띠로 대변되는 베이비 붐, 인구의 이동과 경제의 성장. 이런 변화들이 불러온 불평등에 맞선 노동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과 같은 새로운 생각들 말이다. 물론, 흐름은 유사하나 디테일은 다르다. 자유 교회나 사회주의 대신 노동권이나 민주화라는 차이가 있다. 바로 이 부분에 스웨덴의 역사를 알아가며 느끼는 재미가 있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우리가 선택해야만 했던 것들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쉬어가기
지금은 부유한 스웨덴도, 한 때는 20% 이상의 사람들이 이주를 선택할 정도로 가난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스톡홀름에 이어 시카고가 스웨덴인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도시가 되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갔을까? 구직? 고임금? 종교적 자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대서양을 건널 돈이 없어서 스웨덴에 머물러야 했다.


20세기는 박물관의 설명을 원문과 구글 번역본을 함께 그대로 적는다. 나로서는 담아낼 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빈곤 스웨덴"은 20세기 초반에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엄청난 소득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있는 농업의 세계, 빈민가 지역과 소작농 막사가 있는 국가, 부모가 부양할 수 없는 아이들을 경매에 내놓는 국가.
"Poverty Sweden" was still here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ry. An agrarian world of huge income differentials and social conflicts, a nation with slum districts and share-cropper barracks, a country where children whose parents are unable to provide for them are put up - or rather, down - for auction.

수십 년 안에 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삶을 지배해 온 숲과 들판의 고단함은 쇠퇴한다. 대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와 도시, 사무실과 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복지 사회, 평균 수명이 역사적으로 정상이었던 것의 두 배입니다. "여가", "휴가", "소비"와 같은 개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살아있는 현실이 됩니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마음으로 스웨덴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1900년에도 스웨덴 국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미지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Within a few decades, all this changes. The drudgery of forest and field which has dominated life ever since the neolithic, declines. Instead there are now more people working in towns and citiies, in offices and in industry. Sweden becomes one of the world's wealthiest countries - a democracy, a welfare society, with an average life expectancy twice what has been historically normal. Concepts like "leisure", :"hoildays" and "consumption" become living realities, even to ordinary people. It is only now that people begin, in their heart of hearts, to feel Swedish. In 1900 there are still few people who know what the Swedish flag looks like. Our present-day image of ourselves and our national identity goes back no more than a hundread years in time.

역사학 교수 딕 해리슨
Dick Harrison, Professor of History

처음 이민을 왔을 무렵에 밤거리를 나서는 스웨덴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은 이런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도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나라, 일반인도 "여가", "휴가", "소비"를 즐길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그 행운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하다니. 하지만 아직도 설명하지 못할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느낀다. 생긴 지 백여 년 지난 "대한민국"이란 개념으로는 채울 수 없이 답답하다.

11월 말에도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다른 개념을 원한다. 그 개념은 "전지구적 서사"일 수도, 혹은 "인류세", 또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 개념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전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동질감이 자리를 잡게 되어 오늘날의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당신의 가슴 속에도 자리할 그 감정을, 스웨덴의 역사를 다룬 글들에서 느꼈길 바란다.


*쉬어가기
스웨덴인이란 무엇인가? 국립역사박물관은 이 질문에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같은 국기를 흔들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같은 축제를 즐기는 것이 스웨덴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한국인과 스웨덴인,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우리라고 느낄 관념은 무엇일까?
지금은 명쾌하게 구체화되지 않는 그 답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국립역사박물관은 방문하기 전보다 더 무거운 질문을 안겨주는 것 같다.

[Job] 두 번째 인터뷰를 마친 뒤 든 다섯 가지 짧은 감상 About Sweden

1. 두 번의 인터뷰 모두 화상으로 진행된 점이 신기하다. 경력직 채용이라도 대면으로 한 번 정도는 진행할 것 같으니, 마지막 남은 한 번은 어떨지 궁금하다. (면접비가 없다는 점에선 기업에게 좋을 것 같다. 면접자인 나도 집에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2. 전반적인 형식은 한국에서 취업했을 때와 비슷하다. 다른 점들 또한 신입/경력, 공개채용/수시채용, 국어/영어 등의 차이로 인한 것인지, 혹은 문화의 차이로 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3. 형식적인 차이를 세 가지 나열하자면 인적성 검사가 없고, 일하게 될 부서의 매니저들와 면접을 진행하고, 면접 단계마다 회사와 지원자 간에 수평적으로 대화한다.

4. 인상적인 부분은 면접관이 면접자에게 질문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면접자 또한 면접관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채용담당자에게 보낸 문의 메일이 절차 진행에 도움이 되어서 의외였다.

5. 전반적으로 이전 채용 과정은 회사가 정하고 지원자는 따르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회사와 지원자가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사족) 왜 이런 차이들이 발생했을까? 아마도, 많은 인원을 뽑는 공개 채용과 직무에 필요한 인원만 뽑는 수시 채용의 차이에서 오는 영향이 크리라 짐작한다. 그럼에도, 회사가 지원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것만큼이나 지원자에게 회사에 대해 알려준다는 차이점은 채용을 바라보는 시각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Classic mistakes] 스웨덴 문화를 알아갈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에 대하여 About Sweden

스웨덴 문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서양 문화는 주로 영미권 위주라서 유럽 문화를 접할 때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유럽 문화 중에서도 북유럽에 속하는 스웨덴의 색깔은 독특하다. 특히, 높은 세금을 기반으로 잘 마련된 육아, 교육, 근로 등 복지와 관련된 면들이 유독 눈에 띈다. 우리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도 어쩌다 북유럽 사람들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 놀란다. 비쌀 경우, 수천만원의 학비를 내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 교환학생들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온 친구들은 학비로 한 푼도 더 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격하게 반응하던지... 등록금 말고도 아빠, 엄마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다룬 고용노동부 블로그처럼, 그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할 경우에 그들의 제도와 같은 문화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이런 전형적인 함정에 나도 빠졌었다. 청년실업으로 취업에 근심이 많던 대학생 시절,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만나러 스웨덴에 갔다. 취업에 좋다는 학점에 목을 메고 방학에는 토익을 준비하던 난 그곳에서 고졸로 취업해도 결혼하여 두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전공을 떠나 꿈을 찾아 바리스타로 카페에서 일하거나, 언젠가 간호 대학에 갈 생각이지만 그전 몇 년 동안 이런 저런 경험을 쌓는 친구들을 만났다. 솔직히 말해서 부러웠다. 한국인만큼 IQ가 높지도 않고, 부지런하게 일하지도 않는 이들이 우리보다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니 생각이 참 얕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맞고 틀림을 중요시했던 스물다섯의 어린 나였다. 한편으론 똑똑함과 근면함을 갖춰야 성공한다고 믿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노력해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통해 느꼈던 그 만족감이란!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경로를 정해 밟아나가며, 때로는 어제의 자신과, 때로는 타인과 비교하며 느꼈던 하루하루 더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는 그 성취감을 이제는 느끼지 못한다. 아쉽다.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볼 때 드는 복잡한 감정들은 이제 뒤로 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좀 더 되돌아보자. 그런 믿음을 가졌던 스물다섯의 나는 스웨덴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원인들을 찾아나섰다. 한국의 스웨덴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고, (그 답을 처음 들었을 때는 '유레카'라고 부를 만한 환희를 느꼈었다.) 한국과 스웨덴의 업무 문화를 비교하며 깨달음이라 부르고 싶은 것을 얻기도 했다. (그 차이를 '비밀'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웨덴에 오고 나서야, 외교관이 알려준 '이유'나 업무 문화에 담긴 '비밀'이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적인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지만서도, 그것들 또한 두 국가 간의 제도 차이와 마찬가지로 겉핥기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마치 명품백으로 포인트를 준 화려한 옷차림에 펌과 염색으로 멋을 낸 머리와 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메이크업이 그 알맹이를 가린 것처럼.

그런 원인들 역시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같은 방식으로 동작한다. 당연히 산타할아버지는 북극에서 요정들과 우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시고 크리스마스마다 루돌프와 친구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그 선물들을 나눠주신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자 진실이다. 하지만 꼬치꼬치 캐는 어른의 나쁜 습성이 불쑥 고개를 든다. 산타할아버지는 요정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지불하고 계시는지? 루돌프와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밤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경이로운 업무량 중간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와 같은 불충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의문들은 당연히 틀렸고 잘못되었으며 나쁘기까지하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어른들에게 선물을 안 주시는 것이니 어린아이들은 그런 불쌍한 어른이 되지 말자. 산타할아버지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그 확고한 진리를 믿을 때야말로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런 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아빠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제도'가 좋은 육아 문화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산타할아버지와 같은 믿음이다. 그 제도를 사람들이 따르리라는 믿음이 작동해야 비로소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외교관의 '이유'나 업무 문화의 '비밀' 또한, 그 믿음이 옳고 맞고 좋은지와는 별개로 실제로 작동하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전자가 참인지에 대해 논의하지 후자를 어떻게 실현할 지에 대한 논의를 놓친다. 이러한 전형적인 함정은 마치 놀이동산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 세계로 퐁당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함정에서 나온 다음에 던질 질문은 '믿음이 옳고 맞고 좋은지'를 지나 그런 믿음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다수가 선택할 수 있는가'이다. 못된 어른의 습성 상, 난 그런 논의에 회의적이기도 하고 또 그런 태도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맞고, 옳고, 좋은 우리의 기존 믿음을 버리고 작동 여부도 의심스러운 스웨덴이란 나라를 참고하여 새로운 믿음을 가져야할까? 물론 그 새로운 믿음도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마다 나눠주시는 선물처럼 좋은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그들의 믿음 둘 다 좋을 경우, 우리는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 (혹은 둘 다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는 애들은 산타할아버지가 때찌때찌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블로그를 통해 문화에 관한 질문들을 던졌고 던지고 있고 던질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다 정답이다. (혹은 오답일 수도 있다. 혹시나 슈뢰딩거의 산타할아버지처럼 관측되기 전까지는 정답이면서 오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함정에 빠졌다고 울지말아요 우리 어린이들(😉). 산타할아버지가 착하다고 선물 주실거에요! 함정에 빠지지 말았다고 좋아하지도 말아요 우리 어른이들(😡). 나쁜 애들한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니까요. 그러니까 루돌프야 산타할아버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제가 원하는건 소득증명이 완료된 깨끗한 세후 300억원이에요."라고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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